제45주기 의기제 기획단 추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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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25-05-19 01:06 조회1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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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미국문화와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는 21학번 기획단원 성시현입니다.
“김의기 열사”와 “김의기 선배”는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열사”라고 칭했을 때와 “선배”라고 칭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뭇 다릅니다. “김의기 열사”는 어렵고, 무겁고, 한 인간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이념을 품은 역사 속 위인처럼 느껴지는 존재인 반면, “김의기 선배”라 부를 때면—여전히 멀고 먼 선배이지만—1980년 이 같은 서강대학교 캠퍼스에서, 어쩌면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지도 모르는 한 학생의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겨울을 나며 우리는 의도치 않게 김의기 선배를 한 뼘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포에게 드리는 글>에 나오는 “피를 부르는 미친 군홧발 소리”와 “우리의 눈과 귀를 막으려”하는 총칼을 목도하고, 역사책에 봉인되어 있을 줄만 알았던 친위군사쿠데타를 겪은 까닭입니다. 시대와 동지들의 부름에 답해 광장으로, 남태령으로, 한강진으로, 법원 앞으로, 그리고 세종호텔, 구미 옵티칼, 한화본사 하늘 위의 고공농성장으로 달려가며 김의기 선배도 좇았던 가치들을 일으켜세우려 밤을 지새워본 까닭입니다. 우리가 투쟁했던 그 모든 순간에 김의기 선배의 혼은 우리 곁에 있지 않았을까요. 계엄이 터진 12월 3일 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성명서를 쓰고 연서명을 받기 위해 학생들이 뛰어와 모인 곳이 김의기기념사업회 사무실이었던 것도 80년 그날부터 2025년 오늘까지 이어져온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쉼없이 달려오다 잠시 멈추어 숨을 돌리고 지금까지 온 길을 돌아보려던 참에 의기제가 다가왔습니다. 매 순간을 투사처럼,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책임 가득한 삶을 살 필요도,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의기 선배도 그걸 바라지 않았을테고요. 다만, 더 많은 사람들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이따금—아니 조금 자주 자기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던져볼 수 있는 삶을 택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가 윤달이 있는 해라 따뜻한 봄이 더디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탄핵 광장의 겨울을 거쳐 도달한 지금, 앞으로 풀어나가야할 과제들을 마주한 지금, 봄 햇살 대신 맴돌고 있는 바람이 여전히 서늘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송그리고만 있을 수만은 없음을 우리는 압니다. 지난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발을 딛습니다. 서강을 넘어 광장 모두 함께 김의기 선배가 꿈꾸었던, 죽어서 살지 아니하는 세상으로—봄으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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